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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기념일

영화 1987의 줄거리

영화 1987은 유명한 배우들이 다수 출연합니다. 김윤석, 하정우, 김태리, 유해진등이 출연하였습니다.

1980년대 전두한은 사람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서 3S정책을 펼쳤다. Screen, Sports, Sex 이 세가지 산업을 엄청나게 띄어주었다. 국민들이 영화보고, 스포츠 즐기고, 성에 관심을 가지면 정치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될 것이라는 계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밤 12시 이후에 통행금지를 걸고, 남자 머리 길이랑 여자 치마 길이까지 단속하던 박정희 시대때와는 달리 노는데 만큼은 국민들을 자유롭게 해주었다. 그러면 우리나라는 정말 자유로운 나라였을까? 전두환은 자기에게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고문하고 감옥에 쳐 넣었었습니다. 영화 '변호인'은 이 때를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이 때의 대한민국은 전두환을 위한 나라였습니다. 인권과 민주주의는 없었습니다. 독재정치에 화가 난 국민들은 부글부글 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1985년에 있었던 총선에서는 전두환이 방해공작을 펼침에도 불구하고 야당이 압승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민주화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개헌 이야기도 나오게 됩니다. 개헌이 뭘까? 헌법을 바꾸자는 것입니다. 헌법은 우리나라의 가장 높은 법입니다. 헌법에는 대통령의 임기, 대통령을 뽑는 방법, 대통령의 권한 등 대통령과 관련된 중요한 내용들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대통령을 우리 모두가 선거에 참여하여 뽑도록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헌법은

일반 국민들은 선거에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을 수 있도록 대통령 직선제로 바꾸자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6월 민주항쟁의 핵심적인 슬로건은 호헌철폐 독재타도입니다. 호헌이란 당시의 헌법을 유지한다는 뜻인데 호헌을 철폐하라. 헌법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독재타도는 말 그대로 독재를 물리치자는 뜻입니다. 당시 국민들의 요구는 헌법을 바꾸어서 독재정권을 박살내자는 것이었습니다. 1986ㅕㄴ 인천에서 대대적인 시위가 열렸지만 전두환은 폭력으로 진압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성고문까지 하였습니다. 이 사건의 이름은 '부천경찰서 성고문 사건'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1987년이 되었습니다. 1987년 1월 서울대학교 학생 박종철이 경찰에 체포되어 운동권선배 박종운의 행방을 말하라고 물고문을 하였고 박종철은 사망합니다. 그래서 경찰은

전두환은 '4·13호헌조치'를 발표합니다. 1987년 4월 13일에 당시의 헌법은 88년 올림픽 끝날때까지 유지하겠다는 선언을 한 것입니다. 이 뜻은 전두환 정부가 독재정치를 쭉 유지해 나가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습니다. 최규석 작가가 그린 만화 <100도씨>가 6월 항쟁을 다룬 만화입니다. 그 곳에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물은 100도씨가 되면 끓는다네. 그래서 온도계를 넣어보면 언제쯤 끓을지 알 수가 있지. 사람의 온도는 잴 수가 없어. 하지만 사람도 100도씨가 되면 분명히 끟어 이건 역사가 증명하고 있네." 이 때의 국민들은 폭발 직전의 상태였습니다. 야당과 시민사회 당시 집권 여당인 '민주정의당'의 대통령 후보 지명식이 열리는 6월 10일을 D-day로 잡고 다 같이 시위를 하자고 계획을 짰습니다. 글너데 디데이 바로 전 날인 6월 9일에 연세대 학생 이한열이 경찰이 쏜 최루탄에 머리를 맞고 의식을 잃게 됩니다. 이한열의 희생이 알려지자 사람들은 더욱 분노하였고 '호헌철폐 독재타도' 라는 구호와 '한열이를 살려내라'는 구호가 더해져 6월 민주항쟁은 시작되었습니다. 모두가 거리로 뛰어나와 회사원계층까지 참여하였습니다. 이들을 넥타이 부대라고 불렀습니다.  성직자들까지 한마음이 되어 시위대를 성당에 품어주었고 상인들은 음료수와 음식을 나눠주면서 항쟁에 참여하였습니다. 결국 전두환은 자기 편 노태우를 내세워서 국민들이 대통령을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을 바꾸겠다고 선언을 합니다. 이것이 6·29선언입니다. 그리고 7월 9일 결국 사망한 이한열 열사의 장례 행렬을 끝으로 6월항쟁은 끝이납니다.

그 해의 대통령 선거에서 야당이 분열하면서 전두환의 친구 노태우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습니다.

6월민주항쟁의 진정한 의미는 이제는 그 어떤 지도자도 우리 국민과 민주주의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역사적 근거를 만들어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3년 전 있었던 촛불집회가 6우러 항쟁의 정신을 또 다시 증명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