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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기념일

발명왕 에디슨은 청각장애를 어떻게 극복하였을까

매년 5월 19일은 '발명의 날' 입니다.

국민에 대하여 발명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발명 의욕을 북돋우기 위하여 지정한 기념일입니다.

흔히 우리가 아는 발명가로 에디슨이 있습니다. 에디슨은 1847년 2월 11일 출생하여 1931년 10월 18일 사망하였습니다. 에디슨의 아버지는 작은 제재소를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 미국은 대부분 가축을 기르거나 농사를 짓고 있었기 때문에 목재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드물었고 집안형편이 어려웠습니다. 집안형편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에 에디슨의 형과 누나들은 신문장사와 과일장사를 해서 어려운 집을 돕고 있었습니다.

 에디슨은 평생 1300개가 넘는 발명품을 만들었습니다. 체구는 작았지만 호기심은 커서 궁금한 점이 생기면 그냥 넘어가지 않고 꼭 행동으로 옮겼었기에 위험한 순간도 많았습니다. 유년시절 에디슨이 직접 달걀을 품 안에 품어 부화를 시도해 보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 중의 하나입니다. 에디슨이 수업시간에 질문을 너무 많이 해서 선생님은 자주 황당해하였습니다. 예를 들어서 '2+2 는 왜 4가 되어야 하는건가요?' 같은 것입니다. 선생님과 친구들은 엉뚱한 질문을 하는 에디슨을 답답해하였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에디슨은 초등학교를 다닌 지 3개월만에 학교를 그만두게 되었고, 에디슨의 어머니가 에디슨을 직접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의 노력으로 에디슨은 1년만에 초등학교의 모든 과정을 마치게 됩니다. 

 에디슨이 12살 때 집안형편은 더욱 어려워지게 되었고 기차에서 신문과 간식을 팔아 집안살림을 돕게 되었습니다. 가난한 집안 살림을 돕기 위함이었지만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었습니다. 화물칸 구석에서 실험실을 꾸며 실험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에디슨은 시간이 날 때마다 책에서 배운 과학지식들을 실험을 통해 확인하였습니다. 어느 날 실험을 하다가 화학약품이 떨어져 기차에 불이나게 되었고 에디슨은 일자리를 잃게 되었습니다. 실험을 하다 들켜서 자주 회사에서 쫒겨나게 되었지만 에디슨은 실험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에디슨은 태어날 때 부터 귓속의 반고리관에 장애가 있었고 청각장애인이었습니다.


에디슨은 청각장애를 어떻게 극복하였을까요?


에디슨은 평소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수업시간에 선생님의 말씀을 알아듣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귀가 어둡다는 게 불편한 점만 있다는 건 아니었고 발명에 꼭 필요한 집중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청각장애인인 에디슨은 어떻게 노래를 들을 수 있는 축음기를 발명할 수 있었을까


축음기란 원판에 홈을 파서 소리를 녹음하고 바늘을 사용해서 소리로 재생시키는 장치입니다.

마치 귀가 어두웠던 베토벤이 음악을 작곡한 것처럼 귀가 어두웠던 에디슨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축음기를 발명하였습니다.

어떻게 발명하였을까? 에디슨은 귀로 못듣는 소리를 이를 직접 가져다대서 들었습니다. 그리고 에디슨은 주변의 어떤 소리도 듣지 않고 발명에 집중하기 위해서 오히려 들리지 않는 귀를 다행으로 생각했다고 합니다.

에디슨이 한 말이 바로 흘러나오게 하는 축음기를 선보이게 되었고, 사람들은 에디슨을 마법사라고 불렀습니다.


백열전구, 인류 최고의 발명품 중에 하나인 밤을 밝힐 수 있는 발명품


1879년 2000번의 실험 끝에 세상의 밤을 밝히는 백열전구를 발명하였습니다. 에디슨이 밝힌 세상의 첫날 밤을 사람들은 '에디슨의 날'이라고 불렀습니다.  

                      

에디슨의 연구는 멈추지 않았고 1300개가 넘는 발명품을 만들어 내었습니다. 글자 치는 타자기, 편리한 와플기계, 영화 찍는 영사기, 말하는 인형, 사람을 편안하게 시간도 절약하는 발명품들을 만들었습니다. 에디슨은 주식상장표시기, 탄소전화기, 축음기, 백열전구, 영화 촬영기, 축전기 등 많은 것들을 발명하였습니다. 그 중 백열전구는 우리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멋진 발명품 중 하나입니다.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으로 이루어진다.' 는 유명한 말은 에디슨을 보고 한 말입니다.